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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람 제 2호라는 의미의 'K2'라는 측량기호가 이름이 되어 버린 세계 제2의 고봉 'K2'는 이를 처음으로 측량한 몽고메리 대령의 이름을 따서 '마운트 몽고메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K2에 도달하려면 발토로 빙하를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는 것을 발견한 고드윈 오스틴의 이름을 따서 '마운트 고드윈 오스틴'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간결하고 독자적인 풍격을 가진 'K2'에 밀려 계속해서 사용되지 못했다. 지역명으로는 '쵸콜리'(Chogori)라고 하는데, 발티어로 '쵸'는 크다는 뜻이며 '리'는 산이라는 뜻으로 큰산을 의미한다.

이 이름 역시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발토로 빙하 깊숙히 위치한 콩코르디아(Concordia) 북쪽 끝에 우뚝솟은 K2는 크게 나눠 북릉, 북서릉, 서릉, 남릉, 남동릉, 남서릉, 북동릉의 7개의 주능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K2빙하, 스키앙(Skyang) 빙하, 마르포퐁(Marpophang) 빙하, 고드윈 오스틴(Godwin Austen) 빙하, 필리피(Filippi) 빙하, 사보이어(Savoia) 빙하 등 6개의 빙하에 둘러 쌓여 있는 삼각뿔 형태의 독립봉이기 때문에 주위의 산들과 연봉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이처럼 K2가 여러 대신들을 거느리고 있는 대왕처럼 주위를 완전히 압도하며 준엄하게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파키스탄 사람들이 '하늘의 절대군주'라고 부르는 듯 싶다. 주위에 안부 및 연봉이 없는 완전한 독립봉이기 때문에 빙하를 통과하는 기류가 급해 강풍으로 악명이 높은 봉이다.

처음으로 'K2' 등반을 시도한 것은 1902년이었다. 엑켄스타인 (Eckenstein)이 이끄는 영국, 오스트리아 합동대에 의한 북동릉으로의 시도였다. 서(西)에서 흐르는 발토로 빙하는 가셔브롬 IV에 부딪쳐서 좌우로 갈라지는데, 그곳의 평지를 파리의 광장 이름을 따서 '콩코르디아'라고 부른다. 여기까지 와야 비로소 K2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엑켄스타인은 발토로 빙하가 좌편으로 갈라져 흐르는 고드윈·오스틴 빙하를 거슬러 올라가 K2 바로 아래 5,700m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했다. 쟈코·갸르모와 베세리가 6,525m까지 도달했으나 대원들의 부상과 악천후로 퇴각했다. 이때 쟈코·갸르보가 쓴 <히말라야에서의 6개월>이란 책은 히말라야 문헌의 고전으로 취급되고 있다.

1909년 이탈리아의 아부룻지(Abruzzi) 공작이 이끄는 12명의 대원과 360명의 포터로 구성된 대부대가 후에 아부룻지 능선으로 불리워진 남동릉을 약 6,000m까지 진출했으나 암릉에 막혀 단념했다. 그후 1937년, 영국대가 중국으로부터 진출하여 북벽을 정찰했으며, 이듬해에 챨스·휴스톤의 미국대가 무산소로 남동릉 7,925m까지 진출했다. 1939년 후릿츠 비에스너가 이끄는 2차 미국대는 무산소로 남동릉 8,380m까지 진출했으나 셀파 3명을 포함해서 4명이 사망했다. 1953년 3차 미국대는 1차 때의 챨스·휴스톤을 리더로 남동릉을 재시도했으나 악천후와 대원의 부상으로 7,700m에서 퇴각해야 한다.

1954년 아르디토·데지오가 이끄는 이탈리아대는 수년 전부터 준비해온 성과를 얻었다. 선배 아부룻지 공이 닦아 놓은 남동릉으로 K2의 정상에 선 것이다. 만전의 준비와 잘 조직된 대원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이탈리아대는 팀의 단결된 정신을 존중해서 등정자의 이름을 공표치 않았다. 후에 그들이 아치레·콤파뇨니(A. Compagnoni)와 리노·라체델리(Lacedelli)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K2는 위도상 에베레스트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에 어찌보면 세계 최고의 고소의 영향을 미치며 등반루트 또한 가장 어려운 난관들을 이루고 있다.